당나라 중기는 오대산 불교가 절정을 이룬 시기이다. 특히 대종(代宗) 치세에는 장안(長安)의 불공삼장(不空三藏)이 조정의 원조를 배경으로 767년 남대(南臺)에 금각사(金閣寺)를 건립하여, 오대산을 호국밀교(護國密敎)의 본산으로 자리 잡게 했다. 이때부터 문수보살의 거처인 오대산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일본·중앙아시아·티베트·인도에까지 그 이름이 전해졌고, 각처에서 순례자가 찾아왔다. 청(淸)나라 때에는 라마교의 색채가 상당히 농후해졌다.
옛부터 순례자들은 이곳을 찾아 모든 봉우리에 참배를 했는데, 이를 조대(朝臺)라 하였다. 참배의 전 과정은 100킬로미터에 달하고, 고산의 변화무쌍한 날씨에 순례자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고 한다. 청 건륭 때, 산 아래 ‘대라정(黛螺頂)’에 오대를 참배하는 것이 가능하게 하였다. 사람들은 이를 ‘소조대(小朝臺)’라 부르고, 원래의 다섯 봉우리를 참배하는 것을 ‘대조대(大朝臺)’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