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부(曲阜)는 춘추시대에 노(魯)나라의 도성이었으며, 공자의 고향이다. 구불구불한 언덕이 많기 때문에 곡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전체 인구는 대략 60만 명이고, 그 중 약 40만 명이 ‘공(孔)’씨 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곡부 여행은 공자의 유적지 삼공(三孔)을 참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삼공은 공자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공묘(孔廟)’, 공자의 후손들이 유적을 관리하는 사무실과 거주지라고 할 수 있는 ‘공부(孔府)’, 그리고 공자와 그 후손들의 묘지인 ‘공림(孔林)’을 말한다.
공묘(孔廟)
노(魯)나라의 애공(哀公)이 공자 사후 1년(기원전 478)에 사당을 세운 곳이다. 그 후 역대의 황제가 기부나 희사를 계속하여 현재의 규모가 되었다. 북경의 고궁(故宮), 태산의 대묘(岱廟)와 더불어 중국 3대 건축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① 공묘의 본전인 대성전(大成殿)
② 공자의 아내를 모신 숙전
대성전의 바로 뒤에 있는 숙전은 공자의 부인 올관씨(兀官氏)를 모시는 사당이다.
③ 성적전(聖迹殿)
숙전의 바로 뒤에는 공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성적전(聖迹殿)이 세워져 있는데 이 안에는 공자일생을 소개하는 석각화 120장 외에도 공자화상이 모여 있다.
④ 노벽(魯壁)
⑤ 계탐도(戒貪圖)
공림(孔林)
공자와 역대 자손이 묻힌 묘소로 담장 둘레만 7.25㎞로 세계 최대의 씨족묘지이다. 얼핏 보면 거대한 숲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공씨 일가의 공동묘지이다. 입구에 늘어선 떡갈나무 숲은 그 모양이나 울창함은 관광객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 떡갈나무 숲을 빠져나가면 이림문(二林門)이 나오고 왼쪽으로 가면 수수교(洙水橋)가 있다. 수수교의 북쪽에 있는 향전(享殿)은 공자 축제 때에 향단을 설치하는 곳으로 그 후방에는 공자의 분묘가 있다.
공림은 지성림(至聖林)으로도 불린다. 공자 묘비에는 ‘대성지성선왕묘(大成至聖王墓)’라고 왕의 칭호를 써두었다. 무덤 왼쪽에는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 B.C. 520 ~ B.C. 456]이 공자 사후 6년간 묘를 지키던 움막을 기념해 지은 집이 있고 오른쪽에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 B.C. 483 ~ B.C. 402]의 무덤이 있다.